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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무림고수, 마음다스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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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16:32)
위의 잠언의 말씀은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 말씀은 그림의 떡같이 들리는 말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우리 주변에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벌컥 벌컥 내는 싸움 닭 같은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주변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 소용돌이에 휩쓸려들 게 된다. 어쩌다가 자신에게 불똥이라도 튀게 되면 평안을 잃고 오랫동안 쓰레기통에서 빠진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살아야 한다. 게다가 작지 않은 상처라도 받았다면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상처를 치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직장상사라면 회사를 가는 데 지옥을 가는 것 같은 느낌이 것이며, 사표를 항상 지니고 다니게 될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이런 사람이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가족이라면 불행을 예약한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안은 항상 팽팽한 긴장감과 살벌한 기운이 감돌고, 툭하면 고성과 욕설, 비난과 저주가 화살처럼 날아가 가족 누군가의 가슴에 깊숙이 박힌다. 이건 사는 게 아니다. 가정이 바로 전쟁터인 까닭이다.
그러한 싸움의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라고 마음이 편할까? 이 싸움닭에게 당한 사람은 돌아가며 전쟁을 치르게 되겠지만, 정작 본인은 죽을 맛이다. 쉴 새 없이 싸워야 하고 소리 질러야 하고 분노를 터뜨려야 하니,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사실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이게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기에 지금의 별명을 지고 사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성경은 이에 대해 아주 자세해 말해주고 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인간의 DNA안에 죄가 들어와 박혀있기 때문이라는, 다소 의아한 설명이다. 즉 타락하기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타락하여 죄가 들어온 이후의 인간의 모습은 자신을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는, 탐욕과 방탕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기적인 성품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에 대해 우호적이기 보다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가혹한 징벌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미움, 시기, 질투, 교만, 분노, 싸움, 분열 등의 성품이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된다. 또한 탐욕과 방탕의 성품은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굳어지게 한다. 그래서 음란과 불륜, 술 취함, 알코올 중독을 비롯한 각종 중독, 불법과 불의를 가리지 않고 사특한 권모술수로 사용하여 부와 명예, 권력을 움켜쥐는 인간의 군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성품의 소유자가 타락한 인간의 본모습이라는 게 성경의 설명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툭하면 화를 벌컥 벌컥 터뜨리며 탐욕과 방탕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판박이가 아닌가? 성경의 말씀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을 거울에 비쳐보면 사악한 악마가 비쳐지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자신 안에 악마의 본성이 숨겨져 잇다는 것쯤은 알고 계실 것이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가정에 돌아와 긴장을 풀면 어느새 사악한 본성이 스멀스멀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는 이유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가장 많은 공격을 하게 되고 상처를 입히는 이유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감정이 격앙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누그러지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조심하기에 큰 사건으로 번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사람들은 감정을 조절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화가 치솟으면 참고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터트리며, 만약 상대방이 저항이라고 한다면 싸움으로 번지거나, 심지어는 언어폭력이나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여 큰 싸움에 휘말리거나 자칫하면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화가 나더라도 잠시 씩씩거리다가 조용히 사그라지는데, 어떤 사람은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건에는 은밀한 누군가의 개입이 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악령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악령은 사람의 생각을 속이고 틀어와 감정을 경앙시키고 부추겨 조종하여 큰 싸움과 분열을 획책하는 것이다. 수많은 가정들이 부부싸움 끝에 이혼을 하고, 수많은 교회에 목사파과 장로파와 갈려 싸우고, 교단에서도 감투를 놓고 질펀하게 싸우고, 정부를 상대로 불법시위꾼들은 투쟁을 다짐하여, 국가 간에도 크고 작은 전쟁이 있는 이유이다.
악령이 어떻게 공격하는 지 성경의 사건을 살펴보자.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시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따라왔던 베드로는 불만과 불평에 가득 차서 그럴 수 없다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항변에는 아랑곳없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16:23)’며 사탄을 꾸짖고 있다. 사탄은 베드로의 생각의 틈을 타고 들어가 속여 베드로를 충동질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예수님의 눈에 보기 좋게 딱 걸렸던 것이다. 사도바울도 이러한 사탄의 계략을 경고하고 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4:26)‘ 화를 내는 것은 사람들에게 보통의 일이지만, 화를 오래 품고 있으면 악령이 생각의 틈을 타고 들어가 부추겨서 더 큰 불행한 사건으로 번지게 한다는 말이다. 가룟 유다에게도 이렇게 불만의 틈을 타고 들어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도록 부추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악령이 틈을 타서 부추기는 모든 사건에 사람들의 과오는 없는 것일까? 사탄은 마음만 먹으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속이고 감정을 격앙시켜 불행한 사건을 촉발시킨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사탄이 부추기는 생각들은 죄다 악한 생각들이다. 미움, 시기, 질투, 교만, 분노, 싸움, 분열, 음란, 불륜, 술 취함 등의 악한 생각들은 사람들이 나쁘고 비도덕적이라고 학교나 교회, 가정에서 어릴 적부터 배워왔던 것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러한 악한 생각이 들어오더라도 스스로 절제하며 억제하고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들어온 악한 생각을 참고 견디며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그래서 악령들도 이런 사람들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참지 못하고 욱하며 내 뱉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다혈질이며, 감정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자신의 뜻대로 표출하려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악한 영이 생각의 틈을 타서 들어와 충동시키며 부추기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걸려드는 것이다. 잠시 화가 나고 분노가 치솟더라도 이를 참고 견디는 사람들은 그리 오래지 않아 평상심으로 되돌아오기에 아무 일 없이 위태로운 상황을 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마음의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위대한 사람들이고 승리자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그러나 악령들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감정조절을 잘하지 못하고 충동에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여 넘어지게 하는데 선수들이다. 사람의 취약한 분야는 조금씩 다르다. 어떤 이는 분노, 어떤 이는 탐욕, 어떤 이는 방탕, 어떤 이는 음란 등 사람마다 가장 취약한 분야를 간파하여 이를 집요하게 공격하기 때문에 이겨내는 게 녹록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시험을 감당한 힘을 주시며,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주하는 영적 습관을 들이고, 그분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매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악령이 집요하게 공격하더라도 이를 깨닫게 하시고 대비책과 더불어 물리칠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최고 무림고수는 참고 견디는 성품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성령의 사람인 까닭이다.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는 천국의 자격을 예약한 사람이며, 세상에서 평안하고 형통하게 살아가는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다. 누구나 소망하는 희망사항이지만, 간절히 기도하고 쉼 없이 기도하는 습관을 들인 사람만이 차지하는 면류관이자 보상임에 틀림없다.
관리자 조회 7,486회 2014-06-1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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