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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을 분별하는 그리스도인 되기

본문

제씨 펜 루이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 가운데 있다
“그러나 성령이 밝혀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2).
이 예언이 처음 선포된 지 1,800년이 넘은 지금, 그리스도인을 미혹하는 악한 영들을 보면서 우리는 마지막 때가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마지막 때에 교회를 향한 공격이 특히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탄은 이 초자연적 영역에서 ‘가르치는 영들’을 통해 영적 계시에 열려 있는 사람들을 미혹하고, 이들이 무의식중에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믿는 자들이 마지막 때에 직면하게 되는 위험은 세속성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과 영적 계시에 열린 사람들이 품은 영적 기만이다.
그러나 어둠에 대한 지식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진리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을 수호하고 악한 영들과 그들의 역사에 맞선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거룩한 것을 수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 대적하고, 하나님의 진리에 맞서며 사탄 편에 서는 결과를 초래한다.
어둠의 권세에 대한 지식은 성경으로도 얻을 수 있으나 개인의 경험, 성령의 계시와 진리의 말씀을 비교하여 얻은 지식이 가장 큰 도움이 된다. 경험도 없이 말씀만 보는 것으로는 사탄과 악한 세력의 존재, 사람들을 미혹하는 그들의 방식을 온전히 알기 어렵다. 성경 진리에 대한 계시와, 성경을 바탕으로 초자연적 존재와 그들의 행위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받은 사람은 악한 사탄이 미혹하는 방법을 몰라도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그의 뜻이 하나님을 향하면, 생각을 가로막는 사탄의 능력과 거짓말은 진리의 빛 앞에서 주춤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자기기만과 속이는 자인 사탄의 만행이 여전하다.
초자연적인 것이면 무조건 하나님이 주셨다고 쉽게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이 매우 많다. 이들은 모든 초자연적 경험을 의심이나 분별없이 수용한다. 그러나 모든 교리와 생각과 믿음의 출처를 판단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 마찬가지다. 세상에 드러난 진리를 판단하는 유일한 수단은 하나님 말씀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모든 생각과 믿음이 완전한 진리인 성경말씀과 일치하는지, 십자가와 죄를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런 원칙으로 판단했을 때 마귀의 교리로 드러나는 것은 크리스천 사이언스, 심령주의, 신신학(New Theology) 등이다. 이들은 죄, 구세주,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이슬람교, 유교, 불교 역시 구세주나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종교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도덕적 종교일 뿐이다.
교회로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미혹하는 영들의 최고 정점은 사도 바울이 쓴 데살로니가후서에 나온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오는 자에 대해 이야기한다(살후 2:4). 이 악한 자는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밧모 섬에 있던 요한에게 다시 한 번 계시로 확증된다. 세상 사람들에게 권세를 발휘하려고 속이는 자가 사용하는 무기는 초자연적인 이적이다. 가짜 “양”(계 13:11)이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려고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13절). 그는 세상에 권세를 발휘한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17절). 이미 예언되었듯, 사탄의 권세는 이 초자연적인 거짓으로 전 세계적인 권세를 얻는다. 거짓 ‘가르침’과 ‘현상’ 때문에 교회는 나날이 흑암에 싸이고 미혹되어 온 세상 역시 미혹된다.
다니엘 선지자는 “후일”을 말하면서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라고 했다(단 11:35). 모든 사람이 진리와 대면한다. 일부 선택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허용하신 선에서 일정 기간 미혹을 받는다. 이들은 불의 연단으로 정제되고(제련하는 불로 모든 찌꺼기 축출), 정결하게 되며(축출된 찌꺼기 제거), 희게 된다(불순물이 제거된 금속에 광을 냄).
다니엘서에 나오는 이 “연단”이라는 말로 마지막 때 있을 전쟁을 생각해 보자. 계시록을 보면 표범을 닮은 짐승이 “성도들과 싸워 이긴다”(계 13:7)라고 했다. 다니엘은 원수가 한동안 우세할 거라고 말했다.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단 7:21). 그러나 다니엘은 계속 말한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22절). 이 “마지막 때”(단 11:35)에 하나님은 사탄이 성도들을 이기도록 허락하신다. 용처럼 말을 하던 짐승이 모든 성도와 세상을 정복한 것 같다(계 13:7-15). 그러나 명백한 패배에 하나님의 승리가 숨어 있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성공과 실패만으로는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사탄에게서 왔는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갈보리 십자가는 구속 사역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사탄은 자기에게 남은 시간이 짧다는 걸 알기에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하다. 사망을 통한 생명, 패배를 통한 승리, 고통을 통한 기쁨은 모두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러한 진리를 아는 지식은 미혹에 맞서는 최고의 방패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탄에게서 온 것을 분별해야 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 24:25).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이러한 경고는 백성을 지키고자 사용하시는 그분의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혹을 피할 방법을 찾지 않고서 그저 우리를 지키시는 그분의 능력만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신자들은 원수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탄의 존재와 영향력을 인식하라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에 살던 순진한 남녀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속한 악한 존재의 위협에 무지했다. 여기에서 속이는 자인 사탄의 행동과 그의 교묘한 수법이 처음 등장한다. 그는 선한 것을 이용해 악을 불러오고 악한 것을 선하게 포장하여 이야기한다. 사탄은 하나님을 향한 하와의 열망을 이용하여 하와를 포로로 만들었다. 자신의 파괴적인 목적을 감추면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에 집중했다. 결국 하와는 하나님처럼 지혜로울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하나님의 원칙을 잊고 속임을 당했다.
선함은 미혹에 대한 보호를 보장하지 못한다. 세상과 교회를 속이는 사탄의 수법을 보면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에게 가는 길이며 선한 것처럼 보인다. 사탄은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고 했지 “마귀처럼 된다”고 하지 않았다. 하와는 조금만 생각했어도 사탄의 계략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사탄의 이 말은 하나님처럼 되려면 하나님께 불순종하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무지’는 뱀으로 가장한 사탄의 속임에 넘어가는 기본 조건이 된다.
사탄이 승리했으나 하나님이 무효로 만드셨다. 피해자 하와는 장차 사탄의 행위를 파멸하고 직접 하늘과 땅을 정결하게 하실 승리자를 예비하는 도구가 되었다. 뱀은 저주를 받았으며 여자를 통해서 사탄과 그의 후손인 흑암의 자식을 물리칠 예수님이 오시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 때 뱀에게 대항할 이 약속의 자손을 통해 새로운 세대가 일어날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이후의 역사는 이 두 후손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기록이다.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에덴동산 이후 악한 영의 권세와 역사를 가리고 있던 베일이 사라졌다. 그들의 거짓과 권세가 더 분명히 드러났다. 속이는 자 사탄은 광야에서 여자의 자손인 예수에게 도전했다. 에덴동산과 유대 광야에서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이 시험을 받았다. 두 경우 모두 사탄은 속이는 자였는데, 두 번째 경우에는 조종하고 미혹하는 일에 실패했다. 예수님은 악한 권세의 정체를 깨닫고 그들에게 적대감을 보이셨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사탄의 미혹을 받았다. 베드로는 주님께 십자가의 길을 버리라고 한다. 이후에도 사탄은 베드로를 다시 목표물로 삼는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 속이는 자의 역사는 바울 서신에도 등장한다. 바울은 사탄을 ‘거짓 사도’, “속이는 일꾼”, “광명의 천사”, 가장한 “의의 일꾼” 등으로 지칭한다. 승천하신 하나님이 요한을 통해 교회에 전한 메시지에도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가 등장한다. 요한은 속이는 자들로 가득한 “사탄의 회당”이나 “사탄의 깊은 것”이 교회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마침내 베일이 사라졌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에 대한 계시가 사도 요한에게 주어졌다. 요한은 이 속이는 자의 행위를 드러내고자 글을 기록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참여해야 하는 사탄과의 전쟁이 의미하는 바를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악의와 증오가 가득한 이 거대한 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올바른 지식으로 대적을 분별하라
사탄이 일하는 방식은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로 알 수 있다. 사탄은 좋은 씨(즉, 천국의 아들들) 가운데 가라지(즉, 악한 자의 아들들)를 뒤섞어 놓는다. 이 대적은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조종하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배치하는 능력이 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사탄은 하나님 말씀을 들은 사람에게서 그 말씀의 씨를 낚아채는 자로 묘사되었다. 이 악한 영들은 사탄의 명령대로 움직인다. 사탄은 세상 어느 곳으로든 순식간에 갈 수 있으나 무소부재의 능력은 없다.
광야에서 마귀에게 승리하고서 주님은 흑암의 세력을 계속 무찌르셨다. 겉으로는 자연스럽게 보이는 현상 뒤에 숨은 악한 권세를 꾸짖으셨다. 어둠의 왕자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하고 방해하며 바리새인들을 이용해 예수님께 대적했다. 예수님의 생각을 돌리려 제자를 이용하고,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를 사로잡아 배반하게 만들었다. 또 군중을 선동해 예수님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한편 귀신들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들을 내버려 두라고 매달렸으며 무저갱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막 1:39). “예수께서…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34절).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막 3:11).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실 때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 예수님이 파송하신 칠십 명 역시 주의 이름에 귀신들이 항복하는 일을 경험했다.
사복음서에서 악한 영들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또한 사도행전에도 귀신의 존재가 나오는데 점을 치던 빌립보 여종도 한 예다. 악한 영에게 강하게 사로잡힌 마술사 시몬이 펼친 마술을 본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다고 여겼다. 악한 영들은 “점치는 귀신”(행 16:16)을 이용해 손금을 보거나 점을 치는 사람들을 미혹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들은 미래에 관련되어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 자기들이 장차 하려는 일을 무당을 통해 전달한다. 앞일은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악한 영들의 예언을 들은 사람이 그 내용을 받아들이거나 믿어서 그들에게 협조하면 그들은 그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애를 쓴다. 무당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악한 영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또한 심령주의자는 자신이 죽은 영혼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거짓에 스스로 속고 있다. 그러나 죽은 사람으로 가장하는 일 정도는 악한 영들에게 식은 죽 먹기다. 경건하고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가장하는 일도 가능하다.
우리의 친구나 중보자의 기도는 악한 영들의 활동을 자주 방해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권세는 사탄의 졸개들을 상대할 때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은 흑암의 세력에게 매우 강하게 나타났다. 마지막 때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게 초대교회와 같은 인식과 태도로 나아가 기도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끊임없이 영 분별을 훈련하여 사탄의 미혹에 대처하라
그리스도인마다 성숙의 정도가 다르며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시험의 강도 역시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필요를 아셔서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피할 길을 주신다(고전 10:12-13). 전능하신 만유의 주 하나님은 구원받은 신자의 삶에서 사탄이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하신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은 사탄의 그 사악한 권세가 자신에게까지 뻗치는지는 상상도 못한다. 웨일스 부흥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부흥이 일어난 뒤 많은 신자가 하나님의 역사와 사탄의 역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넘어졌다. 최근까지 일어난 여러 운동에서도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역사로 가장한, 속이는 영들의 계략에 속수무책으로 넘어졌다. 그들 모두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사탄에게 미혹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도 심각한 미혹에 빠질 수 있다.
순전한 동기와 영적 지식이 있어도 미혹에서 안전하지 않다. 순전한 목적도 사탄의 계략을 피하는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의 경고에 마음을 기울이고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누구든 미혹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영적 진리와 하나님이 주시는 통찰에 마음이 열린다. 이 열린 마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간직하려 할 때도 꼭 필요하다. 마음이 닫히면 사탄에게 제일 먼저 미혹당하기 쉽다.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는 이유를 알아보자.
1. 새롭게 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탄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미혹에 넘어갈 수 있다.
2. 원래 어두웠던 마음이 새로워지고 사탄이 가로막고 있던 마음의 베일이 벗겨지면 진리의 빛이 마음을 비춘다. 그러나 아직 제한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3. 미혹은 마음과 관련 있다. 미혹이란 진리로 가장해 마음에 들어온 거짓 생각이다. 사람의 성품이 아니라 무지에 기반을 두므로 참된 영적 지식과 성실함을 지닌 그리스도인도 마귀의 계책과 방법을 모를 경우 미혹에 넘어갈 수 있다.
4. 하나님이 무조건 그리스도인을 미혹에서 보호하신다는 생각 그 자체가 속임이다. 그 사람이 참되고 진실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일하려면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 있는데 그 사실을 밀어내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조건은 이러하다. 하나님은 사람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 없이 일하지 않으시고 미혹을 피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의 무지를 알아서 해결해 주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5. 예수님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다. 미혹의 위험이 없다면 굳이 경고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제자들이 미혹에 주의하고 그것을 알아야 하니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사고력과 자유의지를 적극 사용하라
사탄에게 근거를 내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자신이 아는 죄든 모르는 죄든 모든 죄가 사탄에게 근거를 줄 수 있다. 악한 영들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였을 때도 근거가 될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 악한 영들에게 근거를 내주기도 한다. 신자들이 악한 영들에게 굴복하고 미혹되는 주요 원인을 한 단어로 말하면 ‘소극성’이다. 신자가 자신의 영, 혼, 육에 통제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을 때 그렇다. 소극적 태도는 하나님을 향한 가짜 순복이다.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께 드리고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는 신자는 소극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악한 영들은 신자가 자신의 소극적인 부분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악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신자들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영, 혼, 육으로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행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그분과의 연합 가운데 일어나는 지적인 행동을 하길 바라신다. 소극성과 온유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물론 영, 마음, 생각, 태도, 목소리, 표현을 잠잠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맞는 행동이다.) 소극성은 사람의 의지, 생각, 영, 육체 등 전 존재에 영향을 미치며 시간이 흐르면서 존재 속에 깊이 자리 잡는다. 그 영향력은 점진적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악한 영들이 미혹할 기회를 주는 소극성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데서 기인한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 잘못된 신념이나 이론을 펼치는 것도 원인이다.
그리스도인은 왜 무심한가?
우리는 “Yes, I can(물론 할 수 있다)”라는 말에 익숙하다. 소극적인 사람은 동기가 부여돼 의욕이 생겨도 정작 행동이 필요할 때는 흥미를 잃어버린다. 세상에 매우 민감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관심과 냉담함을 보일 때가 많은 그리스도인을 이해하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둠의 영들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고통과 필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막는다. 소극적 상태는 로마서 6장과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잘못 해석한 데서 생긴다. 이 말의 의미를 오해하여 하나님 말씀에서 균형을 찾지 못한 채 자신의 인격과 행동을 억제하고 소극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로마서 6장 말씀을 죄에 대한 태도로 이해하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하나님에 대한 태도로 이해하며, 고린도후서 4장 10-12절과 빌립보서 3장 10절은 신자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로 만드는 성령의 일하심으로 바라볼 때 어둠의 세력은 패배한다. 다만 이런 태도를 매 순간 선포하고 의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협력하여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에 대한 오해
하나님께 자아를 순복하는 일을 자기 소멸, 자기 포기, 자아 전멸로 이해하는 신자는 자신의 인격과 개인적 필요, 소망, 취향, 감정, 욕구, 외모, 상황, 불편함, 사람들의 의견 등을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자의식이 죽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 외에는 세상 무엇도 의식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렇게 자아를 절대적인 죽음에 넣고 자아 소멸을 실천하고자 자아의 모든 움직임을 없애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런 태도는 자기희생적이고 영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인격을 완전히 억제하게 한다. 소극적인 상태에서 나타나는 초자연적 현상들은 아무리 아름답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처럼 보일지라도 속이는 영에게서 왔을 가능성이 많다. 자아가 가짜로 죽는 일은 영, 혼, 육에서 모든 형태로 나타난다. 악한 영들은 자아가 죽는다는 개념을 속여서 자신들이 개입할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 정작 속은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복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미혹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귀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자기 소멸과 자의식 상실은 성령과 함께 일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신자의 조건과 정반대다.
고난에 대한 착각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당하는 것을 “십자가의 길”(벧전 4:1)로 받아들인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에는 상급과 열매가 있다고 믿고 어떤 형태의 고난이든 무조건 수용한다. 그는 악한 영들이 가짜 고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모든 고난을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제거하기 어려운 죄와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은 어둠의 공격 때문이다. 우리가 진리를 알면 죄를 제거하고 고난도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겪는 고난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한다. 자신이 피해자인데도 오히려 순교자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의 삶 전체가 불합리하고 아무런 목적도 보이지 않는 고난에 휩쓸려 다니게 되고,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성품을 비난하는 일까지 생긴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미혹하는 영들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반항하도록 부추긴다.
겸손에 대한 착각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생각에 자신을 무조건 내려놓고, 심지어 ‘무’의 상태로 이끌 경우 제대로 된 자기평가는 불가능하다(고후 10:12-18). 악한 영들의 말을 듣고 자기를 깎아내린 신자는 자신에 대한 소망이나 자신감을 상실한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어둡고 무겁고 침울한 영을 전달한다. 그의 영은 상처 입고 무너져 우울함에 빠지기 쉽다. 모든 원인을 죄의 탓으로 돌리지만 정작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태도들은 모두 자아를 죽이면서 자신의 참된 성품까지 기능하지 못하게 만든 결과로 일어난 것이다.
나약함에 대한 착각
신자는 거룩하고 힘 있는 삶을 보여 주는 증거로 나약함을 선택하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러한 착각은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는 바울의 말에 근거한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충분한 그분의 능력이 나타남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말은 일부러 연약해지려고 애쓰고, 섬기기에 부족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다음 말씀을 기억하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자신의 의지로 연약해지려고 하면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방해할 뿐이다.
사탄의 활동과 결합된 소극성
자유의지와 생각이 소극적인 상태라고 해서 활동을 아예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행동할 힘을 상실한 채 미혹의 영들에게 사로잡혀서 사탄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통제할 수 없는 생각, 주체할 수 없는 몸, 거칠게 날뛰는 행동 등이 나타난다. 이런 행동들은 간헐적이다. 어느 때는 급하게 움직이다가도 어느 때는 고장난 공장 기계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조작 버튼이 망가져 헛돌아가는 기계처럼 보인다. 이 상태인 사람은 할 일이 쌓였는데도 일을 하지 못하며 일을 안 하는 자신 때문에 더욱 화가 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극적인 상태에 만족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일단 사탄의 역사가 나타나면 거침없이 행동한다. 자신의 거침없고 과열된 행동을 스스로 인식하지만 통제할 도리가 없다. 모든 일이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위 환경과 친화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인의 평안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소행이다.
무엇이 정상인가?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그리스도인은 우선 자신의 정상적인 상태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살펴보고, 그것이 악한 영의 방해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영, 혼, 육과 자신의 존재에서 최상의 상태가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상태가 곧 그 사람이 유지해야 하는 최상의 상태이므로 그 이하에 안주하거나 만족해서는 안 된다.
소극성이 점차 진행되었듯, 그 소극성을 발견하여 제거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소극성을 제거하려면 본인의 의지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혹과 소극성은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깨닫고 모든 미혹과 과거에 사탄에게 내주었던 근거를 거부할 때 비로소 제거할 수 있다. 이때 정상 상태를 계속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잠시라도 그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그 원인을 찾아내어 제거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에서 어떤 부분이 소극성에 굴복했는지 찾아내고 의지를 사용하여 스스로 통제하고 정상을 회복해야 한다.
정부가 자국 영토와 국민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을 노리는 흑암의 세력을 기억하고 끈질기게 저항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더 강한 자”(눅 11:22)는 바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싸울 힘과 회복할 능력을 주신다.
사탄이 위조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말씀으로 분별하라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참된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언제 행동하고 언제 행동을 멈춰야 하는지 내면의 음성을 듣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영의 경고를 못 알아차리고 다른 형태의 인도하심으로 확신을 얻길 기다리면서 성령의 움직임에 둔해진다. 악한 영들이 기다려 온 순간이다. 더는 내면의 영과 협력하지 않고, 자기 의지를 사용해서 스스로 결정하지도 않으며, 초자연적인 징조나 확신을 기대한다. 글이나 현상, 상황 등에서 인도를 얻으려 한다. 이때 악한 영들은 우리의 믿음과 확신을 차지할 기회를 얻는다.
악한 영들은 하나님의 음성도 모방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르며 하나님이 백성과 소통하는 기본 원리를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과 사탄의 음성을 분별하려면 오직 성령만이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령은 우리의 영 안에서 일하신다. 우리의 지적 영역에 하나님의 생각을 심으려고 지혜와 계시를 주신다. 성령의 목적은 사람의 영, 혼, 육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인간의 능력에 자유를 주며 절대 인간을 시키는 대로 일하는 기계처럼 이끌지 않으신다. 우리가 선한 것을 선택하고, 행동할 힘을 주신다. 절대 우리의 자유의지를 무디게 만들지 않으신다. 그런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재림의 목적을 무가치하게 한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마귀의 음성은 성경말씀과 연결될 때 더욱 분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 말씀이 성령의 음성처럼 보이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이나 천사의 음성처럼 들리는 외부 음성을 잘 거부하던 사람도 말씀으로는 쉽게 속는다. 말씀은 무조건 하나님께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별이 매우 중요하다. 1. 생각이나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 적힌 내용을 무조건 의지하는가? 소극적인 태도다. 2. 말씀이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고, 결정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우리 능력을 약화하는가? 3.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로 이끌기보다는 근거 없는 행복감이나 절망, 정죄 의식을 주는가?
성령의 빛으로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냉철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속이는 자의 행동인지 아닌지는 열매로 알 수 있으므로 근원을 분명히 알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음성과 구별되는 마귀의 음성은 그 목적과 결과로 분별할 수 있다.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라면 진실이 드러난다. 사탄은 우리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고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헛수고하게 만든다.
의지를 발휘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로 승리하라
회심한 인간의 영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혼의 능력과 육의 기관을 통해 일하신다. 이때 그리스도인의 의지가 바탕이 된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바울의 말이다.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다시 말해 “나는 수고하기로 선택한다” 또는 “내가 수고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 내게 온다”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우리의 삶이 바로 이래야 한다. 사람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되고 성령의 능력과 사람의 거룩한 뜻이 일치할 때, 사람은 자신의 뜻으로 영, 혼, 육을 통제할 수 있다.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속이는 영으로부터 안전하려면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이 권세는 창조주의 형상인 사람의 의지로 발휘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사탄이 의지를 지배하도록 넘겨주었다. 인간이 타락하고 나서 사탄은 악한 영들을 이용하여 타락한 인간의 의지를 볼모로 삼아 세상을 지배해 왔다. 둘째 아담, 그리스도는 인간을 대신하여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한순간도 그분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광야에서도 사탄의 뜻대로 신적인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겟세마네에서 고통당할 때도 아버지의 뜻대로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끝까지 인간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랐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길을 여셨고, 죄와 사탄에게 묶여 있던 인간의 영, 혼, 육을 구하셨다. 그러나 완전한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것과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으로 완성된다.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법과 목적에 따라 조화를 이룬다. 겉사람도 자신을 절제할 수 있게 된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충성, 온유, 절제 같은 성령의 열매들은 사람의 성품과 혼을 통해 드러난다. 이제 모든 생각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뜻의 지배를 받는 영은 냉철하게 그 영과 마음에 있는 것들을 판단하고 말할 수 있다. 육체 역시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
관리자 조회 7,338회 2014-07-1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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