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주보
기독교대한감리회 연천교회
정욕의 문제-윌리암 맥도날드

본문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믿지 말라.
대부분의 죄는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정신적 음모의 결과로 일어나는 것이다.

격렬하고 불붙는 듯한, 주체할 수 없는 정욕!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젊은이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정욕이야말로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문제거리였다"고 당신은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 그러나 아침부터 밤까지 각종 매체를 통해서 노골적인 성의 공세에 부딛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이기에 이 문제는 오늘날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TV나 라디오, 잡지들이나 신문에 성의 공세가 활개를 치고 있는가 하면 광고 게시판에도 게시되고 있고 영화를 통해서는 생생한 색깔로 방영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자유주의적인 교회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충격적이리만큼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이 "성은 인생의 전부다"하는 관념을 갖는다 해도 이상히 여기지 않고 사람들이 정욕으로 불태워지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게 되었다.

마귀는 지금도 도전해 오고 있다. 아주 복잡미묘하고 추악한 무기를 가지고 나와서 기독교인들을 쏘고 있다. 마귀의 궤계는 지금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음은 정말 말하기 괴로운 일이다. 이 마귀들이 가장 많은 신자들을 쏘아대고 있는 분야가 바로 성적 부도덕의 영역인 것이다. 수많은 남녀들이 이미 타락했고 그 희생자의 명단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빌리 그래함은 오늘날 우리들은 성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혼전 섹스, 혼외 동거생활, 간통, 동성애 등등이 범람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칫 잘못하면 이러한 성의 문명의 생활 스타일에 순응해버릴 위험과 그러한 사람들의 냉엄한 환경에 굴복해 버릴 위험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풍조에 대처해 나갈 것인가?

1. 알아야 할 것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서 도덕적으로 파선되지 않고 살아온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지키어 온 기념 트로피와 같은 사람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장기적으로 우리를 지키실 수 있는데, 타락으로부터 지킴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알아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예를 들면 부도덕의 여러 가지 양상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그것들은 모두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혼전섹스도 죄이며, 결혼하지도 않고 동거하는 것도 죄다. 간음도 죄이며 동성애도 죄다.

어떤 현대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위들을 병으로 부르짖으며 성경은 죄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어떤 이론가들은 말하기를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의 문제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들은 어떤 문명권 안에서도 똑같이 죄라고 규정한다. 그 외에 어떤 성직자는 말하기를 그러한 것들은 그들이 사랑으로 행하는 한 용납될 수 있는 생활의 한 스타일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런 것들은 분명한 정욕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못박는다. 적어도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명확히 죄와 동일하게 간주할 때까지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한 아무 방비도 없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악 가운데 어떤 것은 구약에서는 죽음의 형벌이 내려졌고 신약에서도 그런 것들을 행하는 사람은 사형에 해당된다고 언명했다(고전 1:32). 고린도전서 6장 9절에서 바울은 그러한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 외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더 있다면 결혼한 관계가 아니고서는 성관계가 절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혼외의 성관계는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결혼을 통한 성관계만이 성공으로 이르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자유분방한 부도덕은 결국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하는 말씀과 같이 육체적인 죄에 빠지게 된다. 인간 육체의 모든 조직은 이 죄로 해로운 영향을 받아 죄악감이나 양심의 가책같은 정신적 감정적 결과를 초래하기까지 한다.

로마서 1장 27절에서 바울이 상기시켜주듯이 이러한 사람들은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이 받는"일에 전인격이 관련되어진다. 그런 후에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인생은 비참해지고 그의 말로는 가련해진다. 그는 더 이상 부도덕을 범할수도 없는 종말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혼전섹스가 앞으로 할 결혼에 대해 욕된 기초를 만들어 놓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직접적으로는 상호관의 존경심을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훗일에 논쟁이라도 일어날 경우 어느 한 쪽이 다른 편을 향해 과거의 일을 들추어내어 공격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싸움은 한층 더 심각해질 것이고 결혼은 파경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죄들은 보기에는 아주 매혹적으로 보인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미 죄 속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이 가끔 "나는 생전 그러한 사랑이 있다는 것 조차 몰랐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당신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타락한 인간성이 얼마나 깊이 죄악과 관계되어 있는지를 말해주는 예일 것이다.
얼른 보기에는 죄가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소름끼치는 것이다. 정욕이란 그 종국은 증오로 바뀌기가 십상이다. 사무엘하 13장 15절에 보면 암논이 다말을 미워하는데 그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그녀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 했다고 했다.

우리들도 누구든지 죄가운데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 속에는 부정한 모양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는 낡고 악하고 타락한 성품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 내재하고 있는 죄의 능력을 이길 수 있다. 성령께서는 정욕을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시험을 격퇴해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며 또 주실 것이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저당물처럼 우리들이 붙잡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 죄란 없다.

2. 해야할 것

이제까지 우리들은 알아야 할 것을 다루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되이 하시기를 원하시므로 그 하나님과 합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일의 하나는 생각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더럽혀진 마음은
모든 것을 내쫓고
비워놓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마음 속에 거룩하고 순결하고 의로운 것으로
채워놓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마음을
주 예수님으로
채워야 한다.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일이다. 죄는 마음 속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어떤 행동에 대해 생각하면 그 생각은 곧 우리를 덮쳐오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죄의 뒷골목 길을 돌며 방황한다. 그리고 죄악되고 부정한 공상에 빠져서 죄에 사로잡힌 친구들을 끌어 모으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쾌락의 경험들을 생각해 낸다. 생각하는 것쯤이야 해로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 생각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다. 어떤 일을 한가지 몰두하여 생각하다보면, 얼마나 빨리 그 생각에 휘말려 드느냐 아니면 얼마나 늦게 휘말려 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대부분이 그 생각에 말려들고 마는 것이다. 야고보가 그의 편지의 제 1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말이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생각을 뿌리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뿌리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뿌리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뿌리면 운명을 거둔다.

사고의 생활은 행동이 흘러나오는 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을 억제할 수있다면 행동도 통제할 수 있다.
가끔 우리는 유혹이 우리 위로 살며시 덮쳐오고 야구방망이처럼 재빨리 우리 머릿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면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믿지 말라. 대부분의 죄는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정신적 음모의 결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악한 생각이 마음으로 들어오는 순간에 우리는 그 목덜미를 꽉잡고 끌어내어 주님 존전에서 죄로 정죄하여 완전히 거절해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겠다. 그런 생각은 주님 앞에 간악하고 욕된 것이다. 나는 그런 것과 상종치도 않겠다."

더럽혀진 마음은 모든 것을 내쫓고 비워놓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마음 속에 거룩하고 순결하고 의로운 것으로 채워놓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마음을 주 예수님으로 채워야 한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 보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다. 타락하고 금지된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는 그것들을 쫓아내고 즉시 주 예수님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서 텔레비젼에 대해 몇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가 깨끗한 마음을 갖으려 한다면 텔레비젼 수상기를 치워버리고 마음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텔레비젼이 가져다 주는 것 가운데 몇가지 유익한 것도 있을지는 모르나 대부분이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것은 추한 것을 생각하게 하거나 하찮은 웃음거리같은 것이나 제시한다.
상스러운 말, 세상적인 자태와 사고방식, 성감을 자극하는 몸의 뒤틀음, 욕정적인 음율과 가사, 이런 것들로 채워진 오늘날의 텔레비젼은 기독교인에게 깨끗치 못하다. 그 불결함에 오염되지 않고 그것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정욕을 극복하기를 원한다면, 좋은 방법은 TV수상기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다. 텔레비젼에게 세뇌당하도록 우리 자신을 허락하지 않을 때까지는 결코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역사를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영화나 수많은 책들, 잡지들도 다 같은 것들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마음을 쓰레기로 채운다면 사고의 생활을 연단하려고 힘 쓸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서 부가적으로 해야할 것들이 있다. 그 목록을 열거해 보자.

첫째, 죄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우리 생활 가운데서 발견하자마자 곧 고백해 버려야 한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깨끗하게 지켜주는 좋은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남은 여생을 파멸로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벗어나서 허비해버린, 부패하고 부주의한 순간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여 주는 것이다.

둘째, 성경을 항상 쉬임없이 읽고 그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이끄시고 죄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인 것이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9,11)

셋째, 쉬지않고 기도해야 한다(히 4:16).


다른 말로 하면

주님께 대한 봉사에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의 정력을 쏟음으로써,

그는 욕망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다른 출구를

만들 수 있다.


죽음을 무릎쓰며 간절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되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죄에게 유혹당하지 않고 죄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타락하느니 차라리 하늘의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넷째,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케 해야 한다(롬 12:1,2).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복종한다면(롬 6:16) 그들은 결코 죄에 사로잡힌 노예들은 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다른 기독교인들과 규칙적인 교제를 계속해야 한다(히 16:25).

양들은 목자가 보살피는 우리 안에서 먹이를 먹고 있을 때 제일 안전하다. 그러나 양이 우리를 뛰쳐나와 방황하고 있을 때 이리가 항상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떡을 떼며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신성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여섯째, 주님을 위해 항상 분주해야 한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10).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성적인 욕구는 인간 육체 속에 있는 가장 강한 충동이다. 이 욕구를 배출하고 해소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정상적인 방법은 결혼생활에 있다.
그 외에도 사람은 성적인 충동력을 그 원시적인 목적에서 보다 더 높은 윤리적, 문화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께 대한 봉사에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의 정력을 쏟음으로써, 그는 욕망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다른 출구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고상한 것이다.

일곱째, 우리 생활 속에 시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사소한 교제나 육체적인 접촉을 피해야 한다.

유다는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라"고 말했다(유 23). 우리는 죄악된 관계를 피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떤 격렬한 행동이라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마 5:29,30)고 했다.
요셉은 단호한 행동을 취했다. 그는 자신과 유혹하는 여자 사이에 항상 간격을 가졌다. 그는 자기 옷을 버리고 도망하였으나 후에 영광을 얻었다(창 39:10∼13).

우리는 알코올이나 마약같은, 죄에 대해서 저항하는 천부적인 성품을 약화시키는 것들을 피해야 한다. 알코올이나 마약의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아래서는 평상시에 하지 않던 것도 대담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여덟째, 우리는 일주일에 1,000번이라도 "안된다"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거룩하다"는 말은 "분리되어 다른 것과 구별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기꺼이 분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유혹에 대해 "안된다"고 말할 때마다 점점 더 저항하기기 쉬워 진다. 우리가 승리하면 그 승리는 또 다른 것들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북돋울 것이다. 한편 유혹에 굴복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저항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3. 만일의 경우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내가 뜨겁게 정욕으로 불타고 있고, 그 어떤 것도 이 욕망을 만족케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되며, 정열의 한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싶어질만큼 맹렬히 타오르는 유혹의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답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으리라"(잠 18:10).

베드로가 물에 빠지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는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소리쳤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 14:30).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아 주셨다. 주님은 항상 우리들이 그를 부를 때에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는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당신의 충고는 좋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이미 실패한 인간이다."
자기의 삶을 이미 더럽힌 기독교인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할 말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죄를 고백하고 다시는 죄짓지 않도록 끊어버린 사람에게는 용서함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하나님은 제 2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메뚜기들이 먹은 햇수대로 다시 갚아주실 수 있으시다(욥 2:25). 그는 다윗을 용서하시고 죄와 수치의 오물더미로부터 그를 들어 올려 주셨다. 그는 삼손을 용서해 주시고 그의 이름을 믿음의 용사의 명부에 기록해 주셨다(히 11:32). 만일 당신이 그분께 맡기기만 한다면 그는 당신도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죄를 변명할 목적으로 진리의 말씀을 악용하지 말라.
사단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죄를 범하라, 재미를 맛보라 그래도 하나님은 용서해 줄 터이니까 말이다."

하나님은 용서하실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호되게 징계하신 후에만 용서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로 회개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는 또 다시 죄에게 기회를 제공하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회복의 기쁨에 참여치 못하게 하실 것이다.
성적인 죄나 성욕에 추악하게 말려드는 생활을 해 온 비기독교인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그 사람에게도 어떤 소망이 있을 것인가? 그렇다! 그가 자기 죄를 회개하고 뚜렷한 믿음의 행위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기만 한다면 소망이 있다!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죄에 대한 형벌로부터 자유케 하시며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거룩되게 살도록 능력을 입혀 주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망각의 바닷속으로 그의 과거를 묻어 버릴 것이다. 하나님은 용서하실 때 이미 모든 것을 잊어버리시는 것이다.

정욕은 오늘날 심각한 문제이다. 당신도 유혹의 저 너머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깨어 스스로를 지키라.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기만 한다면 날마다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을 것이다. ■

새생명의 사람들 - 윌리암 맥도날드-
관리자 조회 6,263회 2013-05-1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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